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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include(틀:역대 루이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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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tablealign=right><tablewidth=500><tablebordercolor=#dddddd,#010101><tablebgcolor=#ffffff,#1c1d1f><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1 리처드 콜턴}}}[br]Richard Colton | Ричард Колтон''' ||
4||<-2><nopad> [[파일:리처드_콜턴.png|width=100%]] ||
5|| '''본명''' ||리처드 제럴드 콜턴[br]Richard Gerald Colton ||
6|| '''출생''' ||1963년 5월 4일 ([age(1963-05-04)]세) ||
7|| '''국적''' ||[[루이나]] ||
8|| '''신체''' ||188cm, 94kg, 혈액형 O형 ||
9|| '''종교''' ||개신교 (루터파) ||
10|| '''직업''' ||정치인, 군인, 법학자 ||
11|| '''소속''' ||[[루이나 행정부]] ||
12|| '''소속 정당''' ||[[민주공화당(루이나)|루이나 민주공화당]] ||
13|| '''학력''' ||세인트 바룬 고등학교 {{{-2 (졸업)}}}[br]애포르 육군사관학교 {{{-2 (졸업)}}}[br]루이나 국립대학교 법학과 {{{-2 (법률학 / 석사)}}} ||
14|| '''병역''' ||육군 제7기갑사단 {{{-2 (대위 전역)}}} ||
15|| '''대통령 재임''' ||제10대 루이나 대통령[br](2013년 1월 17일 ~ 2021년 1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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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임자''' ||[[제럴드 랜돌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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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후임자''' ||[[루스탈지아|루스탈지아 그래이]] ||
18||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콜턴서명.png|width=150]]}}} ||
19|| '''정치 성향''' ||보수주의, 민족주의, 법치주의, 실용적 국가주의[br]※ 좆박은 정치(Fucked Politics)의 대표 사례로 언급됨 ||
20|| '''대표 저서''' ||《조국의 기둥》(2008)[br]《질서의 자유》(2011)[br]《국경과 헌법》(2016) ||
21|| '''주요 정책 성과''' ||- 연방교육지침 제정 및 공교육 표준화[br]- 철도 민영화 및 교통노선 개편[br]- 전역 군인 재배치 및 군-산 연계 일자리 확대[br]- 기업 환경 개선 및 중소기업 규제 완화 ||
22|| '''주요 경력''' ||- 루이나 육군 중령 예편 후 정치 입문[br]- 루이나 국방부 차관보 (1998~2011)[br]- 루이나 제10대 대통령 (2013~2021) ||
23|| '''기타 이력''' ||- ‘강한 루이나’를 내건 보수 정권의 대표 주자[br]- 극단적 국론 분열과 흑백적 정치 수사로 ‘좆박은 정치’의 교과서적 사례로 언급됨[*][br]- 웨스트로 경기장 사고 당시 최고통수권자로 비판 받음[br]- 퇴임 이후 회고록 《전장은 사라지지 않는다》(2022)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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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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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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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리처드 제럴드 콜턴(Richard Gerald Colton, 1963년 5월 4일생)은 루이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법학자이며, 제10대 루이나 대통령(2013년 1월 17일 ~ 2021년 1월 16일)을 지낸 인물이다. 보수주의, 민족주의, 법치주의, 실용적 국가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내세운 그는 ‘강한 루이나’를 표방하며 강경한 국가 통치를 이끌었지만, 퇴임 후 드러난 대규모 부패 사건으로 인해 정치 인생의 말미를 치욕적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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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콜턴은 세인트 바룬 고등학교 졸업 후 애포르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제7기갑사단 소속 장교로 복무했으며, 대위로 예편한 뒤 루이나 국립대학교 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국방부 차관보로 발탁되며 보수 진영의 유력한 국방·안보 전략가로 주목을 받았고, 2013년 루이나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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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그의 주요 정책으로는 표준교육지침 제정 및 공교육 표준화, 철도 민영화, 전역 군인 재배치 및 군산복합체 연계 일자리 정책, 기업 규제 완화 등이 있으며, 집권 초기에는 행정 효율성 제고와 군기 강화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중앙집권 강화, 야당 및 언론에 대한 적대적 대응 등은 극단적 국론 분열을 불러왔고, 특히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당시 무책임한 대응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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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퇴임 이후 2년간 조용히 지내던 그는, 2023년 초 플라자 바이오 및 복수의 기업 특혜 제공, 대통령 재단을 통한 자금 횡령 및 불법 세탁, 고위공직자 뇌물 커넥션 의혹 등으로 인해 수사당국의 공식 수사 대상이 되었다. 그해 4월 8일, 크레테 외곽 자택에서 전격 체포되었으며, 이때 속옷 한 장만 입고 침대에 드러누운 채 체포를 거부하다가 강제 연행되는 장면이 전국 생중계되며, 루이나 정치사상 전례 없는 조롱과 충격의 상징인 ‘빤스 투혼’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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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이 장면은 그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으며, 루이나 국민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언론은 “권위의 마지막 천 조각”이라 표현했고, 대중문화에서는 수많은 패러디, 풍자, 밈으로 재생산되었다. 일부 보수 성향 언론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무시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다수 여론은 “진실을 피한 자의 최후”라며 체포를 정당한 사법 집행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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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콜턴은 퇴임 직후 집필한 회고록 《전장은 사라지지 않는다》(2022)에서 자신의 정치 행보를 “국가 안보와 질서 수호의 역사적 사명”으로 규정하며 억울함을 피력했지만, 비리 정황이 속속 드러난 이후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정치학자들은 그를 두고 “정치적 카리스마와 강압적 통치가 공존했던 인물”이라 평가하며, ‘[[좆박은 정치]](Fucked Politics)’라는 표현이 그의 통치방식을 대표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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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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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일생 ==
46=== 콜턴 행정부 ===
47====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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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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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사건 사고 ==
52
53==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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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빤스 투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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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019년 4월 8일 오전, 루이나 광역수사국(MIA)과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전직 대통령 리처드 콜턴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크레테 외곽의 전용 별장에 진입하였다. 체포영장은 ‘플라자 바이오 특혜 의혹’ 및 ‘콜턴 재단 자금 횡령’ 등 중대 부패 혐의에 따라 전날 밤 벨포르 중앙지법 형사22부에서 발부된 것으로,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루이나 사법사상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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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당시 수사팀은 기동요원 12명, 검찰 특별수사관 5명, 현장 촬영 담당 2명, 법무부 관측인원 3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작전명은 비공식적으로 "폴라리스 작전"이라 명명되었다. 새벽 6시 40분경 진입이 시작되었고, 별장 경호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제압되었다. 그러나 본체 침실에 머물고 있던 콜턴 본인은 문을 잠근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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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침실 문을 강제로 개방한 수사팀은, 침대 위에 상의 없이 속옷만 착용한 채 드러누워 있는 콜턴의 모습을 목격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체포 사실을 통보받자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이건 정치적 살인이다”라며 고성을 질렀고, 이후 침대에서 일어나기는커녕 몸을 더욱 웅크리고 눕는 방식으로 체포에 저항하였다. 양팔을 벌려 침대 프레임을 움켜쥐고, 다리를 침대 틀에 얹은 채 움직임을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반복적으로 “끌려가고 싶으면 끌고 가라”며 수사팀을 도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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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결국 체포조는 강제 집행을 결정하였다. 두 명의 기동요원이 콜턴의 양팔을 붙잡고 그를 침대에서 끌어냈고, 별장 복도를 따라 입구까지 이송하는 동안 그는 격렬히 소리를 질렀으며 수차례 체포를 “불법”이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속옷은 엉덩이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체 상당 부분이 노출된 상태였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흐트러진 머리, 허연 살결 등 그 모습은 현장에 대기하던 언론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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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당일 오전 7시경, 루이나 통신(RBS)을 비롯한 5개 주요 언론사가 별장 앞에서 체포 장면을 생중계하였다. “전직 대통령 긴급 체포”라는 속보 자막과 함께, 속옷만 입은 채 끌려 나오는 콜턴의 영상은 고스란히 전국에 송출되었고,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방송은 단 11초간 송출되었으나, 그 장면의 파급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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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국민 다수는 권위의 상징이었던 대통령직의 몰락을 실감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그가 보여준 무력한 저항과 민망한 차림새에 불편함과 조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후 이 사건은 언론과 대중에 의해 ‘빤스 투혼’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명칭은 하루도 되지 않아 전국의 방송·신문·주간지에 정식 제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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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벨포르 일간》은 “국가는 그를 내려앉혔고, 그는 팬티 하나로 맞섰다”고 보도했으며, 《루이나 저널》은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은 대통령의 속살이었다”는 표현으로 상황을 묘사했다. 체포 당시 영상은 2일 만에 패러디 콘텐츠로 확산되었고, 대학가에서는 “속옷만 입고 싸우는 콘테스트”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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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이 사건은 루이나 정치문화 전반에 커다란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밈 문화에서는 ‘팬티가 남긴 권위’, ‘삼각의 저항’, ‘끌려가며 외친 마지막 침묵’ 등의 해시태그가 유행했으며, 일부 광고업체는 해당 체포 장면을 희화화한 광고 시안을 제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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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몇몇 팬티 브랜드는 콜턴이 착용한 것과 유사한 디자인을 복각 판매하기도 했으며, “콜턴 에디션 삼각팬티”는 일시적으로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정치 풍자 만화에서는 팬티 차림의 콜턴이 독재자의 왕좌에서 끌려 내려오는 모습, 또는 MIA 요원에게 어깨를 붙들린 채 벽을 넘는 장면 등이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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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한편, 보수 성향 언론은 "체포 당시의 복장은 개인의 자유이며, 수사기관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어야 했다"고 비판했으나, 다수의 국민은 “그동안 누려온 과도한 특권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응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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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정치학자 로랑 아르노는 이 장면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77>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계적 복종을 거부했다. 다만 그 거부가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그는 권위를 입고 퇴장하길 원했지만, 속옷만 남긴 채 역사에서 끌려나왔다."
78=== 공식 기록과 역사적 의의 ===
79사건은 공식 수사 기록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80> “피의자 리처드 콜턴, 체포 당시 속옷(하의)만 착용한 상태로 침대에 누운 채 체포 요구에 불응하였고, 강제 이송 중 육체적 저항 반복. 체포 시 신체 노출 일부 발생.”